내가 어렸을 땐, ‘마약’이라는 단어는 영화나 외국 드라마 속 이야기였다.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말이 익숙했고, 그만큼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.
그런데 요즘은 뉴스에서 청소년이 마약에 중독됐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본다.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워준 영상을 보게되었는데 켄싱턴 거리, 래퍼 불리다바스타드에 대한 영상이었다. 그 후로 마약은 무엇이길래 사람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걸까? 사람이 사람답지 않게하는걸까? 아까 본 영상은 현실이 아닌 영화가 아닐까?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.
‘대체 마약이 뭐지?’
‘일반인이 마약에 중독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?’
물론 요즘은 텔레그램으로 배달된다던데 일반인인 ‘우리가’ 그걸 시도해볼 거라는 상상이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.그래서 자극적인 영상보다 조금 더 구조적으로 마약에 대해 알고 싶었다. 그렇게 처음 읽게 된 책이 바로 백승만교수의 『대마약시대』였다.
책에서는 펜타닐 외에도 아편, 모르핀, 코카인 등 다양한 마약의 역사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. 무작정 “나쁘다”고 말하지 않는다. 각각의 마약이 등장한 배경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. 가장 놀랐던 건 ‘마약 주사방’이라는 공간이었다. 처음 듣는 말이었다.
정부 시설에서 마약 놓는 사람들
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공인 마약 시설 ‘인사이트’사고·전염 막기 위해 간호사 입회 아래 스스로 주사
h21.hani.co.kr
유럽, 특히 스위스에서는 198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. 중독자들이 가져온 마약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주사기를 나눠주고 공간을 제공해주는 시스템. 상담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. 그건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, 단약(끊기)으로 이끄는 하나의 타협이었다. 이후 독일, 프랑스, 네덜란드, 호주, 미국까지 이 시스템은 퍼져나갔고 실제로 건강과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결과도 있었다.
코로나 시기에는 약물을 집에 가져가게 했고 60명 중 52명이 규칙을 잘 따랐다고 한다. 기대 이상이다.
대마약시대는 마약에 대해 다루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호르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. 마약의 효과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호르몬이다.
예를 들어 엔도르핀. 우리 몸은 괴로움을 이겨낼 때 이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한다. 매운맛, 특히 캡사이신처럼 통각을 유발하는 걸 이겨내는 과정에서도 엔도르핀이 나온다고한다! 그래서 내가 매운 음식을 좋아하나 보다.
엔도르핀 수치를 높이는 방법은 많다. 30킬로미터를 달리지 않더라도 적절한 운동으로 조금씩은 방출할 수 있다. 햇빛이나 매운맛, 웃음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. 지금 마약류 중독이 궁금한 분이라면 일단 밖으로 나가서 뛰길 권한다. 그리고 땀이 흥건히 차오를 때 중국집으로 들어가 짬뽕 한 그릇을 시키면 된다. 고춧가루를 더 넣어도 된다. 얼얼한 국물을 가득 들이켠 후 사람들과 수다 떨며 웃는 그 순간이 바로 마약이다.
햇빛을 쬐는 것도 도움이 된다. 산책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단순히 ‘노는 기분’ 때문만이 아니라, 자외선이 피부를 자극하며 엔도르핀이 나오기 때문. 이게 2014년 논문에서도 다뤄졌다고 한다.
그리고 도파민.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나오는, 익숙하지만 중요한 호르몬!
운동, 산책, 명상, 음악, 그리고 사랑. 모두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. 2015년 일본 연구에서는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.
세상에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많으니 마약류는 그냥 남의 일로 여겼으면 한다. 메스암페타민이나 펜타닐은 한 번의 사용만으로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. 절대 마약류를 피해야 하는 이유다. 그럼에도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간접적으로 마약류를 느껴보길 바란다. 매운맛, 수다, 달리기, 햇빛, 음악, 사랑. 소중하고도 강력한 것이 우리 곁에 꽤 많으니 말이다.
책을 덮고 나서 가장 강하게 남은 건 이거였다.
“나는 절대 중독되지 않아”라는 생각!! 그게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.
일부는 호기심에, 또 일부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마약을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.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제약회사의 오남용,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중독자가 되어 있다.
중독은 단순히 ‘끊어야지’ 한다고 끊어지지 않는다. 단약 이후에도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고,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. 그래서 사회적인 도움, 제도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.
『대마약시대』는 마약이라는 낯설고, 무섭고, 어쩌면 우리와 관계없다고 여겨졌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현실로 끌어다 놓는다.
지금의 우리나라가
다시 예전처럼 마약청정국이 될 수 있기를.
누군가가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빠져나오기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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